
창고를 열었다는 것 — 고구려 태조왕의 재난 경영
흰 사슴과 메뚜기 떼 사이에서, 국가는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가
2026년 6월 2일 · 역사 — 한국사 · Watchman
재난이 기록될 때, 권력도 함께 기록된다
역사 기록은 대개 재난보다 전쟁을 선호한다. 전쟁은 영웅이 있고, 승패가 있고, 이야기가 있다. 재난은 그저 숫자다 — 얼마나 많이 죽었는가, 얼마나 오래 굶었는가.
그러나 가끔, 재난의 기록 안에 전쟁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들어 있다. 그것은 국가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가장 날것의 대답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태조왕 10년, 서기 62년의 기사를 이렇게 전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태조대왕 10년 (서기 62년)
“여름, 국내성에 큰물이 져서 백성들의 집이 떠내려가고 잠겼다. 가을, 남부에 메뚜기 피해가 발생하여 백성들이 굶주렸다. 왕이 사냥하여 흰 사슴을 잡았다. 창고를 풀어 구제하였다.”1
원문: 夏, 國內大水, 漂沒人家. 秋, 南部蝗, 民飢. 王田, 獲白鹿. 出倉賑給.
사건을 사건으로 읽으면, 이것은 그저 재해 연표의 한 줄이다. 패턴으로 읽으면, 국가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방식에 관한 2,000년짜리 교과서가 펼쳐진다.
흰 사슴이라는 신호, 메뚜기 떼라는 현실
서기 62년의 고구려는 동시에 두 개의 사건을 마주했다. 하나는 상징의 세계에서 벌어졌고, 하나는 현실의 세계에서 벌어졌다.
흰 사슴(白鹿). 고대 동아시아에서 백록은 단순한 희귀 동물이 아니었다. 하늘이 군주에게 보내는 길조(吉兆), 천명(天命)이 이 왕에게 있음을 자연이 확인해 주는 표징이었다. 중국 한(漢)나라에서도 흰 사슴이 출현하면 연호를 바꾸거나 사면령을 내리는 것이 관례였다.2 태조왕의 사냥에서 포획된 흰 사슴은, 홍수와 메뚜기 피해로 동요하는 민심 앞에 왕실의 신성함을 재확인시키는 정치적 언어였다.
그러나 상징은 배를 채우지 못한다.
메뚜기 떼(풀무치)의 피해는 당시 농경 사회에서 가장 두려운 자연재해 중 하나였다. 벼·기장·조를 주식으로 삼는 고구려 농민들에게 가을 수확 직전의 메뚜기 피해는 곧 겨울의 굶주림을 예고했다. 국내성의 홍수는 집과 저장 식량을 앗아갔다. 북쪽은 물이 넘쳤고, 남쪽은 하늘에서 재앙이 쏟아졌다. 동시에 발생한 이 두 재해는 고구려가 이미 상당히 넓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음을, 그리고 그 영토 안에서 지역별로 서로 다른 기후 조건이 작동하고 있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태조왕은 이 둘 앞에서 두 가지 행동을 동시에 취했다. 하나는 흰 사슴의 포획 — 민심에 상징적 안정감을 부여하는 것. 다른 하나는 창고를 열어 구제하는 것 — 민심에 물질적 생존 근거를 제공하는 것. 심리적 안정과 물질적 지원.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수행해야 위기가 통치 위기로 번지지 않는다. 2,000년 전의 이 공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창고를 연다는 것 — 국가 행정력의 증명
“창고를 풀어 구제했다”는 기록은 간단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여러 겹의 의미가 층층이 쌓여 있다.
우선, 창고가 있어야 한다. 비축할 수 있는 행정 체계가 작동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고구려 초기의 구휼 체계는 뒷날 고국천왕 16년(194년)에 제도화되는 ‘진대법(賑貸法)’의 전신 격에 해당한다.3 진대법은 봄에 관곡(官穀)을 빌려주고 가을에 거두는 방식으로, 고구려가 사실상 국가 복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태조왕의 창고 개방은 그 제도화 이전, 왕의 직접 결단으로 이루어진 임시 구휼이었다. 제도가 없는 시대에 제도적 기능을 수행한 것 — 이것이 태조왕 대 고구려의 국가 역량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다.
다음으로, 창고의 물자가 실제로 피해 지역에 도달해야 한다. 국내성에서 홍수 피해 지역까지, 남쪽 메뚜기 피해 지역까지 — 수송로와 배분 체계가 작동하지 않으면 창고를 아무리 열어도 소용없다. 을음(乙音)의 살수 주둔 등 변방의 군사·행정 거점 확보가 선행되었듯, 태조왕 대의 구휼도 이미 일정 수준의 지방 행정 연결망 위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태조왕 재위 시기는 고구려가 5부(五部) 체제를 정비하고 고추가(古鄒加)·대로(對盧) 등 관등제의 맹아를 갖추어 가던 시기였다. 재해 상황에서 국왕이 직접 구휼을 주도한 것은, 부족 연맹체에서 왕의 권위가 각 부족장의 합의를 넘어서 독립적으로 행사될 수 있을 만큼 중앙 권력이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을음의 살수 주둔과 고구려의 영역 국가 전환 과정을 살펴보았다. 군사·행정 거점의 확보가 나라의 외피를 완성했다면, 창고를 여는 결단은 그 나라의 내용물을 채우는 행위였다. ☞ 진영을 세운다는 것 — 을음이 살수에 선 날
동시대 세계 — 같은 위기, 다른 대답
서기 62년의 고구려가 창고를 열고 있던 그 무렵, 지구 반대편에서는 비슷한 위기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었다.
로마 제국 네로 황제 시기였다. 서기 62년 네로는 첫 번째 아내 옥타비아를 유배 보내고 처형하며 권력을 더욱 개인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4 2년 뒤인 64년, 로마 대화재가 발생했을 때 네로가 보여준 위기 대응은 역사의 반면교사가 되었다. 피해 복구와 이재민 구제에 나서는 대신, 기독교인에게 방화 책임을 전가하고 박해를 가했다.5 거대한 상징 프로젝트인 ‘황금 궁전(도무스 아우레아)’을 착공하며 황제의 위엄을 과시했지만, 민심은 이미 돌아선 뒤였다.
창고를 열지 않은 제국은 결국 황제를 잃었다. 네로는 68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동아시아로 시선을 옮기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서기 62년 무렵 중국 후한(後漢)의 명제(明帝, 재위 57~75년)는 천재지변 발생 시 황제가 스스로 자책하는 조서(罪己詔)를 내리고 세금을 감면하거나 창고를 열어 구제하는 것을 관례로 삼았다.6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재난은 하늘이 군주의 실정(失政)을 경고하는 신호로 해석되었다. 즉, 재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군주가 천명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생존의 문제였다. 태조왕의 구휼도 이 논리 위에 서 있었다.
그러나 후한의 구휼이 황제 중심의 중앙집권 체계에서 작동했다면, 고구려의 구휼은 아직 중앙집권이 완성되지 않은 단계에서 왕의 결단으로 수행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제도 이전에 의지가 먼저였다. 그 의지가 반복되면서 제도가 탄생했다 — 132년 뒤, 진대법으로.
같은 시기 한반도 남쪽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신라는 태조왕 재위 기간(53~146년)과 상당 부분 겹치는 탈해 이사금(재위 57~80년) 치하에 있었다. 신라 역시 이 시기 흉년과 기근 기록을 갖고 있지만, 구휼의 제도화 수준은 고구려에 미치지 못했다.7 고구려가 창고를 열어 재난에 대응하는 동안, 신라는 아직 그 단계로 나아가는 길 위에 있었다. 국가의 성숙도는 전쟁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재난 앞에서도 드러난다.
재난이 국가를 만든다 — 기후사가 증언하는 것
그렇다면 당시 재난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삼국사기》가 무심하게 남긴 그 짧은 기록들은 사실 거대한 지구적 기후 변동의 흔적이었다. 기후사(氣候史) 연구에 따르면, 서기 1~2세기 동아시아는 ‘로마 온난기(Roman Warm Period)’의 후반부 변동기에 해당한다.8 안정적이었던 기온과 강수 패턴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중국 화북 지방과 한반도 모두에서 홍수·가뭄·충해가 단기간에 교차하는 불규칙한 기후 패턴이 나타났다. 한반도 고기후 프록시(Proxy) 데이터 — 퇴적물 분석, 꽃가루 화석 등 — 도 이 시기의 기후 불안정성을 독립적으로 확인해 준다. 서기 62년의 국내성 홍수와 남부 메뚜기 피해의 동시 발생은, 바로 이 기후 변동기의 국지적 반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2,000년의 시간을 단숨에 뛰어넘는다.
2025년 한국은 기록적인 폭우와 가뭄이 같은 해에 교차하는 이상 기후를 경험했다. 기상청은 한반도 강수 패턴의 극단화가 가속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서기 62년 국내성의 홍수와 남부의 메뚜기 피해가 동시에 발생한 구조 — 북쪽은 물이 넘치고 남쪽은 말라가는 구조 — 는 오늘날 기후 위기가 만들어내는 지역 간 불균등 피해 패턴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재난은 국가가 비축하지 않은 것을 드러낸다. 곡물 창고든, 재난 기금이든, 사회 안전망이든 — 평시에 쌓아 두지 않은 것은 위기 때 꺼낼 수 없다.
그리고 또 하나. 태조왕의 창고 개방이 진대법이라는 제도로 이어지는 데 130년 이상이 걸렸다. 위기 대응의 경험이 축적되고, 그것이 제도화되기까지의 시간. 지금 한국의 재난 대응 체계 — 재난지원금, 피해 복구 예산, 농업재해보험 — 는 수십 년에 걸친 재난 경험의 축적 위에 서 있다. 위기 경험이 제도를 낳는다. 제도가 다음 위기를 견디게 한다. 이 순환이 끊기면 국가는 매번 같은 실수를 처음부터 다시 반복한다.
성경 속의 같은 패턴 — 요셉의 창고
서기 62년 태조왕이 연 창고의 논리를 가장 명확하게 선취한 이야기가 성경에 있다.
창세기의 요셉이다. 이집트 파라오의 꿈을 해석한 요셉은 7년의 풍년 뒤에 7년의 흉년이 온다는 것을 예고했고, 풍년기에 곡물을 비축하여 흉년기에 이집트와 주변 지역의 기근을 구제했다.9 이것은 단순한 식량 관리가 아니었다. 예측 가능한 위기에 대비하여 국가 자원을 미리 조성하고, 위기 시 이를 분배함으로써 공동체를 유지하는 국가 행정의 원형이었다.
요셉의 창고와 태조왕의 창고 사이에는 수천 년의 간격이 있다. 그러나 두 사건이 말하는 것은 같다. 비축(備蓄)은 미래에 대한 윤리적 책임이다. 창고를 채우는 것은 탐욕이 아니라 돌봄이다. 그리고 위기 때 그 창고를 여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국가의 본분이다.
우리가 아직 묻지 않은 질문
서기 62년의 기록은 짧다. 홍수, 메뚜기, 흰 사슴, 그리고 창고. 네 단어면 충분했다.
그러나 그 네 단어가 남긴 질문은 2,00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국가는 재난 앞에서 무엇을 꺼내야 하는가. 상징인가, 창고인가. 혹은 둘 다인가 — 그리고 그 순서는 무엇인가.
태조왕이 ‘창고(물질)’와 ‘흰 사슴(심리)’을 동시에 동원했듯, 현대의 복합 재난 역시 재난지원금이라는 물질적 처방과 ‘사회적 신뢰 구축’이라는 심리적 자본이 동시에 필요하다. 둘 중 하나만으로는 위기가 통치 위기로 번진다. 2,000년 전 고구려의 군주가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을, 우리는 지금 제대로 알고 있는가.
2026년의 한국은 기후 위기, 고령화로 인한 사회 안전망 재정 압박, 반도체·에너지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동시에 교차하는 복합 재난의 시대에 들어서 있다.
비축하지 않은 국가는 위기 때 국민에게 빌릴 수밖에 없다. 빌리면 빚이 된다. 빚은 다음 위기를 더 취약하게 만든다. 이 단순한 순환을 태조왕의 고구려는 1세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묻는다 — 2,000년 뒤, 우리의 창고에는 지금 무엇이 들어 있는가.
* 참고할 말씀: ‘빈궁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 잠언 19:17
1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5, 고구려본기 제3, 태조대왕 10년 조. 원문: “夏, 國內大水, 漂沒人家. 秋, 南部蝗, 民飢. 王田, 獲白鹿. 出倉賑給.” 김부식(金富軾) 저, 1145년.
2 흰 사슴의 길조 상징: 반고(班固), 《한서(漢書)》 〈무제기(武帝紀)〉 원수(元狩) 원년(기원전 122년) 조. 흰 사슴 출현과 연호 변경 관례 확인. 동양 백록 상징 일반론: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 《아시아사 개설》(조선대학교 출판부 번역본, 1985).
3 진대법(賑貸法): 《삼국사기》 권16, 고국천왕 16년(194년) 조. “春三月, 下令, 國中諸部, 每年自春三月, 至秋七月, 出官穀, 以百姓家口多少賑貸, 至冬十月, 還納.” 을파소(乙巴素) 건의로 시행. 태조왕 구휼과의 연속성: 노태돈, 《고구려사 연구》(사계절, 1999), 3장.
4 네로 황제 서기 62년: Tacitus, Annals, XIV.60~64. 옥타비아 처형 및 권력 집중 과정. 한국어 번역본: 타키투스, 《연대기》, 김경현·차전환 역(한길사, 2011).
5 로마 대화재(서기 64년)와 네로의 대응: Tacitus, Annals, XV.38~44. 기독교인 박해 및 도무스 아우레아 착공. Suetonius, Nero, 38. 국내 참고: 존 드레인, 《초대 교회의 사회와 문화》, 황의무 역(CLC, 2014).
6 후한 명제(明帝)의 재난 구휼: 범엽(范曄), 《후한서(後漢書)》 〈명제기(明帝紀)〉 영평(永平) 연간(58~75년) 조. 수재·한재 시 조서 및 구휼 기록 다수 확인. 참고: 이한우, 《후한서로 읽는 중국사》(21세기북스, 2020).
7 신라 탈해 이사금 시기 기근 기록: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 제1, 탈해 이사금 조. 구휼 체계 비교: 이기백, 《한국사 신론》(일조각, 1999), 2장.
8 로마 온난기(Roman Warm Period) 및 동아시아 기후 변동: McCormick, M. et al., “Climate Change during and after the Roman Empire,” Journal of Interdisciplinary History 43-2 (2012), pp.169~220. 한반도 고기후 프록시 데이터: 기상청, 《한반도 기후변화 이해》(기상청, 2018), 1장. 퇴적물·꽃가루 화석 분석을 통한 1~2세기 기후 불안정성 확인.
9 요셉의 곡물 비축 및 구제: 《창세기》 41:46~57. 개역개정.
© Watchman, 바라보는 자의 기록 (bara.watchmaninsight.com). 무단 전재 및 2차 창작 시 사전 동의 필요.
📢 새 글 알림 받기
💬 카카오톡 채널 추가하기